학생이 '찢어진 답안지'를 제출한다면 교수님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여기 용감하게 답안지를 찢어 제출한 학생과 그 답안지를 받아든 교수가 있다.
지난 22일 전호근 경희대 철학과 교수는 '찢어버린 답안지'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전 교수는 늘 오픈북으로 시험을 치루게 했으며 심지어 옆 친구 답안지를 봐도 좋고 서로 상의해서 답을 쓰는 것도 허용하는 '파격적인' 출제자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 주어진 주제나 자신(학생 본인)이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찢어버려도 좋다고 권한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 정말 답안지를 찢어버린 학생이 있다. 이전까지 정말 답안지를 찢어본 학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 교수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인간의 가치 탐색'이라는 수업 제목과 찢어진 답안지가 담겨있다.
철학과 1학년인 이 학생은 찢어진 답안지 위에 포스트잇을 세로로 덧붙이고는 이런 글을 써내려갔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정상적인 판단'을 통해 바람직한 '정답'만을 마치 기계에서 뽑아내듯 강요하는 세상을 거부하고 자신의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통해 스스로 세운 방식에 따라 자기만의 해답을 발견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가치이다. 이에 나는 제도가 인간에게 점수를 부여하고 마치 소고기 등급 매기듯 인간을 재단하기 위한 수단인 '답안지'를 찢어버림으로써 인간이 바로 그러한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겪어왔던 괴로운 일들과 그로 인해 생긴 상처를 깊게 들여다보고 자기가 무엇을 지키고 싶었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무엇을 동경하고 소망하는지 등을 발견해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 없이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그렇게 살 수 있고, 또 그러다가 죽을 수 있어야 인간은 동물도 기계도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필자의 이야기를 조금만 첨언하자면 답안지가 이렇게나 잘 찢어지는 것인지 수험생 시절에는 미처 몰랐다. 한학기 동안 대학생이 되어 공부하며 내가 얻은 깨달음은 바로 이 찢어진 답안지가 잘 담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찢어진 답안지를 내가 찾은 '가치'에 관한 나의 '해답'으로서 제출하고자 한다. |
전 교수는 "학생의 글을 읽으면서 영화 '동주'의 송몽규가 윤치호에게 받은 상패를 내동댕이쳐버리는 장면이 떠올랐다"며 "이 학생은 알렉산더의 용기를 지녔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칼로 끊어버린!"이라고 감탄했다.
신화에 따르면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를 통합하기 전 '프리기아'라는 나라에서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본다.
이 매듭에는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라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매듭 구조가 너무 복잡해 아무도 못 풀고 있었다.
이에 알렉산더는 매듭을 푸는 대신 단칼에 끊어버렸고 이후 대제국을 건설했다. 답안지를 찢은 패기를 알렉산더의 지혜에 빗댄 것이다.
전 교수가 올린 게시물은 23일 오후 6시 기준 300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으며 누리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답안지를 찢은 이 학생의 미래가 기대된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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