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가 우리나라를 'S의 공포'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경기 침체 속에서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나, 이 정도는 아니지만 경기가 둔화하는 가운데 물가만 오르는 '슬로플레이션' 우려가 갈수록 번지고 있어서다. 러시아산 석유 공급 우려로 폭등한 국제유가가 우리나라 경기와 물가에 '이중 악재'를 몰고 온 셈이다.
8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장중 한때 배럴당 124.61달러를 기록했다. 전날인 7일 배럴당 130.50달러까지 치솟았던 것과 비교하면 조금 낮긴하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앞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만 하더라도 서부텍사스산원유는 종가 기준 배럴당 92.81달러였다. 전쟁이 격화하자 3거래일 만인 지난 1일 배럴당 103.41달러로 100달러를 돌파한 것은 물론, 2일에는 110.60로 110달러도 넘어섰다. 그러더니 이제 120달러선으로 오른 것이다.
전쟁이 본격화한 이후 불과 2주일여 동안 35%가량 급등한 셈이다.
환율도 심상찮다. 최근 3거래일간 32원 넘게 오른 환율은 8일 1237원까지 급등했다. 코로나19 사태 직후인 2020년 6월 1일(1237.3원) 이후 1년 9개월만이다. 금융권에서는 1250원까지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이미 크게 불붙은 국내 물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원자재값이 잔뜩 오른 상황에서 환율마저 올라 수입가격이 뛰면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가 상향 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커진다.
안 그래도 국내 물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이었다.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5%를 기록했다. 2012년(2.2%)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다.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인 2%를 가뿐히 넘겼다.
올해 들어선 한 번 오르면 좀처럼 내리지 않는다는 외식물가마저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물가 지수(2020년 전국 평균=100)는 107.39로 1년 전에 비해 6.2% 올랐다. 이를 두고 금융권은 물가 상승세가 전 품목에 걸쳐 공고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점심 식사 한 끼에 1만 원은 일상이 됐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기준 삼계탕 평균 가격은 1만4500원, 냉면은 9962원, 비빔밥은 9308원이다. 칼국수도 7962원, 김치찌개 백반은 7154원을 기록했다. 대표적 서민 음식인 자장면은 5769원이었다.
한은이 예상한 올해 물가상승률은 3.1%다. 이마저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면전으로 치닫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진 않은 결과다. 전쟁이 확전 양상을 나타내자 금융권에선 앞으로 '물가 4%' 시대가 도래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 인해 '자장면 1만원 시대가 열리는 게 아니냐'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긴 하지만 전문가들은 치솟은 국제유가가 수요 위축과 경기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낮은 경제성장률에 따른 기저효과로 올해 경기가 좋아 보이는 착시 효과가 발생했을 뿐 실제로는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공급 충격 속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서 우리나라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 때문에 안 좋았던 경기가 현재 회복되는 국면에 있으며 인플레이션 때문에 경기 회복 속도가 둔화될 수는 있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현재 우리나라가 경기 침체에 빠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하 교수는 "전쟁 국면이 어떻게 변화할지가 변수로 남아 있으며 스태그플레이션 진입 여부에 대해선 경기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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