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할머니가 마을 골목을 뛴다. 숨이 턱까지 찬다 하시면서도 보고도 믿기 힘든 뜀박질을 멈출 수가 없다. 20여분 전,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임시 진료실을 찾아왔다. 중풍 발병 이후 쓰지 않아 굳어있었던 근육 신경들이 치료를 받은 후 되살아났다. 버스를 타고 온 의사 덕분에 16년 만에 지팡이 없이 두 발로만 걷게 되었다.
12년째 전국을 누비며 의료 봉사하는 통증의학과 전문의 안 강
시골 구석진 곳까지 찾아와 어르신들의 허리, 어깨, 무릎 등 관절, 근육 통증을 무료로 치료해준 사람은 의사 안강. 그는 3개월 이상의 예약 환자가 밀려있을 정도로 바쁜, 속칭 서울에서 잘 나가는 만성통증치료 권위자다. 누가 봐도 남부러울 것 없는 그가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의료 봉사를 하겠다고 주말마다 전국 곳곳을 누빈다.
어머니의 권유로 왕진 가방 하나 들고 시작했던 의료봉사가 올해로 12년 째. 병증의 원인을 모르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병을 키워온 어르신들을 치료하고 쾌차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 때문에 지금껏 꽤 부려볼 생각은 아예 못해 봤다.
3년 전 자비를 들여 중고 버스를 구입하면서 의사 안강의 의료 봉사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의료장비와 기구를 버스에 실으면 정차하는 곳이 곧 무료 진료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버스를 먼저 구입하고 대형 운전면허를 따기 시작했다. 3번의 낙방을 딛고 4번째 만에 딴 대형 운전면허. 의사 면허보다 따기 힘들었던 버스 운전대를 잡고 서울의사가 시골로 간다.
부릉부릉 왕진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
시골구석까지 의사가 직접 버스를 운전해 찾아온 것도 이상한데 그를 따라 버스에서 하차한 사람들은 더욱 놀랄 만한 인물들이다. 아내와 20대 두 딸, 10대 두 아들. 가족으로 구성된 의료봉사단이다. 의료 위생복으로 갈아입고, 어려운 의료기기를 주문해도 척척 아버지의 손에 대령하는 모습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 능수능란하다.
버스를 타고 온 사람은 가족뿐 만이 아니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20년간 탐험가의 숙명을 선택했던 사진작가를 비롯해 화가, 전 수학교사, 가수, 소설가, 개그맨, 도배사 등 직업군들이 다양하다. 모두 주말 휴식을 반납하고 의사 안강의 뒤를 따른 것이다.
의료의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시골 어르신들의 아픈 무릎과 허리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길을 나선 의사 안강의 마음에 이끌려 그들만의 또 다른 재능을 나누고자 왕진버스에 몸을 실은 사람들. 안강이 허리 굽은 어르신들의 통증을 치료하는 동안 누군가는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누군가는 구수한 입담으로 마음을 치료하고,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으로, 누군가는 곰팡이 핀 집에 도배로 단장해 마음을 쓰다듬는다.
봄을 지나 여름, 가을을 달리는 왕진버스 (의료 봉사 120일간의 기록)
바쁜 병원 일정에 쫓겨 피곤해도 의료 버스의 시골행은 거르는 일이 없다. 시골 어르신들의 간절한 기다림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봉사를 통해 스스로 얻는 것이 더 많다는 안강의 일행들. 철마다 바뀌는 시골 풍경을 벗 삼아, 시골 어르신을 만나러 달리는 왕진버스는 그 어떤 여행보다 설렘을 가득 싣고 달린다. 굽은 어르신들의 허리보다 더 그들의 마음이 곧게 펴지는 치유의 여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방송일시 : 2013년 10월 8일(화) 밤 10시 50분- KBS 1TV
■ 책임프로듀서 : 박석규
■ 제작사 : (주)프로덕션 미디컴
■ 내레이션 : 배우 이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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