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펀 코멘테이터 허순옥] 자폐증에 대한 귀중한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는 동물학자 탬플 그랜딘의 멋진 강연입니다.
4세 때 심각한 자폐증 진단을 받았던 탬플 그랜딘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폐증을 극복하면서 주변 세계와 소통을 성공시킨 후 명망있는 학자가 되어 왕성하게 활동 중인 아주 보기 드문 지식인입니다.
그녀의 이 귀중한 강연무대에서 우리는 자폐증의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녀는 자폐증이 특정 질환이라기 보다는 사고를 전혀 다르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얘기합니다. 언어를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과 달리, 자폐증은 시각 정보나 패턴을 중심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언어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과 아주 다르게 세상을 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신발’이라고 하면 언어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상적인 신발’을 막연하게 떠올리게 되겠지만, 자폐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구체적인 신발’의 거대한 데이터를 떠올리게 된다고 합니다. 마치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하듯, 몇 년도의 어느 브랜드의 어떤 모델의 신발인지를 하나하나 모두 체크하는 사고 구조를 가졌다는 것이죠.
이런 디테일한 이미지적 사고가 자폐증의 대표적인 특징인데, 이러한 사고 구조는 동물의 사고 구조를 이해하는 단서이기도 합니다. 언어적 사고를 하지 않는 동물들은 주로 시각적 사고나 후각적 사고를 하는데, 이런 사고는 언어적 사고와는 달리 매우 세밀하고 구체적이어서 일반적인 뇌를 가진 사람들은 수행하기 힘든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가 동물의 축사나 도살장을 설계하거나 변경하는 작업 역시 이러한 디테일한 시각적 사고 때문에 혁신을 만들었는데, 문제를 파악하거나 해결하는 것들은 추상적인 사고가 아닌 구체적인 사고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 그녀가 주장하는 자폐성의 긍정적 사례입니다.
또한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의 연속체, 즉 정도의 차이에 근거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어서 괴짜에서부터 천재적인 예술가나 엔지니어들에게까지 다양한 자폐성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실리콘밸리에 있어야 할 많은 자폐아들이 엉뚱한 곳에 있다는 얘기로 청중들의 환호를 받기도 합니다.
그녀는 인류에게 이런 자폐성향이 없었다면 진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합니다. 그만큼 자폐증은 뇌의 기능을 새롭게 쓰는 방식과 새로운 관점을 인류에게 제시해왔고 이들의 기여가 인류문명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그녀가 자폐증의 대표적인 감각적 사고가 어떤 분야에 응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인상적인 사례로 마무리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의 항공기 사고 중에서 다섯 번의 치명적인 추락에서, 문제는 꼬리 날개의 결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전체적인 형태를 먼저 보는 추상적 사고의 습성과 비슷한 것들의 통일적 형태를 일반화시키는 뇌의 구조 때문에 이 결함을 찾아내지 못하지만, 자폐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꼬리 날개의 디테일한 다른 요소들을 먼저 구별해서 보는 성향 때문에 이 결함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것입니다. 이들에게 모든 꼬리날개는 다 다른 꼬리날개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 <탬플 그랜딘>(2010.미국)에서 보다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나왔던 클레어 데인즈가 탬플 그랜딘 역을 맡은 실화를 배경으로 한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또한 그녀가 저술한 책은 김영사에서 2011년 <어느 자폐인 이야기>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되었습니다. 그녀의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분들께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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