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를 이끌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5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선대위에 합류한 지 33일만의 일이다.
윤석열 대선 후보가 선대위를 해체하면서 해촉된 모양새나, 김 전 위원장은 "뜻이 맞지 않으면 헤어지는 것"이라며 본인 의지에 의한 사퇴를 분명히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윤 후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 전부터 국민의힘 선대위를 총괄할 것이 유력했다. 이준석 당대표는 공공연히 "3월9일 승리하는 대선 후보의 옆자리에는 김종인이 있을 것"이라며 당대표 선출 이후 줄곧 '김종인 중심'의 선거대책을 짜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를 선언한 지난해 6월29일부터 유력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 후보도 경선 과정부터 김 전 위원장을 찾아 많은 조언을 구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배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자리매김했다.
실제 윤 후보는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김 전 위원장을 찾아가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제안하며 선대위를 끌어달라고 부탁했다. 윤 후보는 만남 이후 약 열흘 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가져온 선대위 안이 '매머드급'이었다는 게 김 전 위원장의 설명이다.
순조롭게 풀릴 것 같던 선대위 구성은 이때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김 전 위원장은 '매머드급' 선대위를 '항공모함'에 비유하며 총괄선대위원장을 거부했다.
평소 껄끄러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진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상임선대위원장으로,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를 새시대준비위원장으로 영입하는 것은 갈등의 표면으로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핵심은 아니었다.
오히려 윤 후보의 최측근으로 불린 이른바 '윤핵관'(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의 막후 조정 의혹을 김 전 위원장이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 결정적 결별 원인으로 지목된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광화문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도 직책도 없는 사람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권성동·윤한홍 의원이) 물러났다고 물러난 것이냐"고 말했다. '지금도 직책 없는 사람'은 한때 윤 후보의 비서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장제원 의원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3일 윤 후보가 '잠행'에 나선 이 대표와 '울산회동'에서 전격 화해하는 순간 총괄선대위원장직을 맡겠다고 '깜짝' 선언했다. 후보 선출 이후 한달만의 일이다.
김 전 위원장은 이에 대해 뉴스1과 인터뷰에서 "선대위가 비대하지만 후보가 선택했고 이렇게 가다가는 연말쯤 한번 위기가 오면서 선대위를 개편할 수밖에 없을 상황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그 예상에 따라 맡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최근의 일련의 상황이 올 것이라 짐작했고, 그 때 선대위 슬림화에 나설 구상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국민의힘 선대위는 '울산합의'를 바탕으로 지난해 12월6일 출범했다. '후보 윤석열-총괄 김종인-홍보 이준석'이란 삼각체제로 막강한 위용을 드러냈지만 이내 인사 영입 문제로 윤 후보와 이 대표가 갈등을 겪으면서 난맥상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예가 이수정 경기대 교수와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다.
여기에 지난해 12월20일 선대위 회의에서 공보단장이던 조수진 의원과 이 대표가 크게 맞붙고, 이 대표가 이 일로 선대위 모든 직책(공동상임선대위원장 및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에서 사퇴하겠다고 천명하면서 내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이 대표는 이후 각종 언론 인터뷰와 방송 출연 등을 통해 '윤핵관'뿐만 아니라 윤 후보도 직접적으로 비판했는데 이것이 당내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당이 '오합지졸' 수준으로 전락하자 김 전 위원장은 지난 3일 전격적인 선대위 쇄신을 천명했다. '6본부장 사퇴' 등 본인 외 모든 선대위 간부급 인사들을 물갈이하고 슬림형 선대위로 다시 출발하겠단 것이 핵심이었다.
이 과정에서 '후보의 비서실장이라도 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내보인 김 전 위원장은 '후보에게 연기라도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실언이 나오며 상황이 악화일로로 빠졌다. 윤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후보를 비하하려는 나쁜 뜻에서 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그의 측근들은 "윤 후보가 상당히 언짢아했다"고 전했다.
윤 후보는 결국 '김종인'까지 날리며 '홀로서기'를 택했다. '연기자'가 아닌 '감독'이 되어 모든 책임을 본인이 지겠다는 강한 의지의 발로란 해석이다.
김 전 위원장은 '선대위 재합류는 없다'고 못박았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10년간 최고의 '킹메이커'로 통한 김 전 위원장의 정치인생 마지막에 오점을 남겼다"는 평가와 반대로 "윤 후보에게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미리 '손절'한 것이 그나마 최악은 피한 것"이란 평가가 공존한다.
한편 윤 후보는 이날 "김건희씨의 공식 등판 시기는 결정했나"라는 질문에 "재작년 조국 사태 이후 처가와 제 처도 집중적인 수사를 약 2년간 받아왔다. 그러다보니 심신이 많이 지쳐있다"라며 "어떤 면에서는 좀 요양이 필요한 상황까지 있는 상태다"라고 강조했다.
윤 후보는 이어 "형사적으로 처벌될 일이 크게 없을 것 같아서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여성으로서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본인이 잘 추스리고 이후 선거운동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인 운동에 동참하기보다는 봉사활동이라든지 조용히 할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나, 그 정도 생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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