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를 골자로 한 '검수완박' 법안을 놓고 여야가 정면충돌했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총장 시절 "검수완박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며 작심 발언을 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태도다.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은 19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검수완박에 대한 윤 당선인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윤 당선인은 차기 정부의 국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출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가장 몰두하고 전념하는 것은 국민의 민생회복"이라고 말했다.
'아빠 찬스' 논란을 빚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관련한 윤 당선인의 입장에 대해서는 "국민께 앞에 나서서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소명할 시간은 국회 인사청문회장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갈음하겠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검수완박 법안과 국무위원 후보자의 논란 등 현안에 대해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다. 그는 지난 8일 "나는 검사를 그만둔 지 오래된 사람이고, 형사사법 제도는 법무부하고 검찰하고 하면 된다"며 "나는 국민들 먹고 사는 것에만 신경쓰겠다"고 했다.
정 후보자의 자녀 의대 편입·아들 병역 특혜 등 각종 논란에 대해서는 지난 17일 "부정(不正)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냐"는 입장을 낸 후에는 특별한 추가 언급을 하지 않았다. 윤 당선인은 정 후보자의 추가 의혹에 대해서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켜보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놨다.
윤 당선인이 침묵하는 배경에는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깔려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검수완박 법안의 경우 검찰총장 출신인 그가 직접 반대 입장을 내면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우는 '검찰공화국' 프레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검수완박 이슈는 현재 민주당이 제출한 법안 조항이 위헌이냐, 아니냐는 내용적 측면과 민주당 자체에서 의견이 갈리는 내부 갈등에 조명이 맞춰져 있다"며 "윤 당선인이 참전하면 프레임이 검찰공화국, 정치보복으로 전환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 임기 내에 검수완박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172석 의석수를 앞세워 4월 임시국회 처리를 추진 중이지만, 국민의힘과 정의당이 극렬 반대하고 있다. 국민 여론이 악화된 채로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가 6·1 지방선거에 후폭풍이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 법안은 그 자체로 위헌 소지가 있고 논리도 엉성해서 여론이 악화하는 상황"이라며 "정의당조차 동의하지 않는 법안을 민주당 혼자 무리하게 강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윤 당선인이) 그런 현실적 문제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당선인은 검수완박 법안을 '국회의 시간'에 맡기고, 자신은 코로나19 긴급대책과 소상공인 손실보상 등 '민생 현안'에 주력하는 이원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정치 현안에서 한발 물러나 국정 운영에 주력하는 '대통령의 면모'를 보이는 것이 이롭다는 판단에서다.
인수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당선인이 (검수완박 법안은) 국회에서 논의되는 입법 문제이기에 입법 활동 존중하는 차원에서 지켜보는 것"이라며 "아직 대통령이 아닌 당선인 신분이라 말씀을 아끼는 것이 운영과 입법을 존중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고 했다.
[사진] 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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