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또다른 누군가에겐 묵직한 삶의 무게와 충격적인 장면들을 선사했던 추억의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놀랍게도 이 작품의 주인공은 '철이'가 아닌 '메텔'이다.
추호의 의심 없이 '철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은 "설마"라며 믿기 어렵다는 입장일 수도 있지만 여기엔 그럴만한 근거가 있다.
대체 왜 은하철도 999의 철이가 주연이 아닌 조연인지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1.메텔의 정체가 이야기의 핵심이다
잠깐 생각해보면 메텔에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느닷없이 철이 앞에 나타난 이 묘령의 여인은 철이 엄마를 빼다박은 외모는 물론 엄청난 가격대의 은하특급열차 999호의 티켓을 공짜로 제공한다.
게다가 무슨 시간은 또 그렇게 많은지 열차 티켓만 홀랑 주고 가는 것도 아니고 그 긴 여정에 몸소 동행해준다.
출신과 나이, 가족와 직업, 동기 모두가 완전히 불명이다. (이 스토리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심을 못했던 우리가 잘못한 거다.)
사실 메텔은 철이의 엄마를 죽여서 박제해 오라고 지시했던 프로메슘 여사의 딸이다. 그리고 (당연히 프로메슘의 지령으로) 메텔은 철이를 안드로메다의 별로 데려가 로봇의 몸으로 바꾸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목적이다. (참고 : '은하철도999' 1화에서 모두가 지나친 충격적인 장면)
다시 말해 은하철도 999는 엄마를 잃은 철이가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는 로봇의 몸을 갖기 위한 여행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메텔이 철이를 데리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다.
작품 전체를 가로지르는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질문과 고뇌는 그래서 꼬마 철이가 아닌 고뇌에 가득 찬 임무를 맡은 메텔이 겪는 내면의 갈등과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
2.작품 속 메텔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메텔은 전 우주를 여행하고 있는 스토리의 주역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어머니 프로메슘 여사로부터 철이를 로봇의 몸으로 바꾸라는 지령을 받은 메텔이 전 우주로 파견됐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 대한 의견은 두 가지가 있는데, 다중우주로 파견됐다는 설과 몸을 복제해 우주 전체에 파견했다는 설이 있다.(주지하다시피, 메텔은 로봇이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에피소드가 철이가 은하특급열차 999호를 타고 우주를 여행 하던 중에 우연히 열차를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거기엔 자신와 똑같이 생긴 아이와 메텔, 그리고 차장이 있는 것을 목격한다.
이 장면은 메텔이 우주 전체로 파견돼 철이와 비슷하게 생긴 수많은 아이들을 로봇의 별로 데려가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것.
메텔의 큰 고뇌가 여기에 있다. 비록 어머니 프로메슘의 지령이긴 해도 아이들을 속여 로봇으로 만드는 자신의 임무에 대해 큰 회의를 갖고 있는 것. 그래서 메텔의 의상은 까만색의 상복 컨셉으로 만들어져 있다.
당연히 은하특급열차 999호의 색도 장례차와 같은 검은색이다.
그래서 은하철도 999의 숨겨진 거대한 스토리의 주역은 메텔이 된다.
3.사실 철이는 주인공이 되기엔 너무 단순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은하철도 999는 마음을 바꿔 영원한 로봇의 몸을 포기하고 지구로 돌아오는 철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임무를 저버리고 철이를 도와주는 로봇 메텔의 인간보다 더 심대한 고뇌와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철이가 지구에서 사냥꾼들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철이가 뛰어난 신체능력이나 영특한 지혜를 발휘해서가 아니라 단지 아버지 파우스트 박사의 부탁 때문이다.
철이를 살려서 로봇으로 만들자고 프로메슘 여사에게 부탁을 했던 것.
그리고 이 미션을 메텔에게 맡긴다.
작품 속에서의 철이는 이 모든 스토리를 전혀 알지 못한 채 별다른 의심도 없이 메텔을 따라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목적지에 도착해서 심경을 바꾸고는 메텔의 도움을 받아 다시 열차를 타고 지구로 돌아온다.
이런 철이를 놓고 이 작품을 논한다면 너무 단순한 이야기가 된다.
메텔을 중심으로 놓고 이 작품을 논해야만 이야기 전체를 이해할 수 있고 회당 에피소드를 정리할 수 있으며, 이 작품이 일관되게 전달하고자 한 인간과 생명에 대한 심도 있는 철학적 주제에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메텔이 인간으로 남겠다는 철이를 도와주는 것은 로봇이 자신이 임무를 어기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며, 여기엔 사랑(모성)과 생명에 대한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그리고 비록 철이를 도와주지만, 자신의 임무를 다시 수행하기 위해 은하특급열차 777로 갈아타고 또 다른 철이를 찾아서 여행을 떠나는 메텔이 사실상 주인공의 자격에 가깝다고 하겠다.
또한 철이는 여기에서 그 역할이 끝나지만, 메텔의 역할은 계속 이어진다.
따라서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은 메텔이며, 철이는 메텔의 극적인 심경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 조연이라는 분석이 타당해진다.
이것이 비롯 로봇이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선택을 한 메텔이 이끌어가는 은하철도 999의 실제 이야기다.
*다음의 마지막 글에서는 은하철도 999가 사실은 하록선장과 천년여왕이 등장하는 거대한 대립의 사서구조 속에서 파생된 작은 에피소드이며 메텔이 바로 천년여왕이라는 놀라운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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