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김치'의 중국어 번역 및 표기를 '파오차이'(泡菜, 한국식 발음 포채)에서 '신치'(辛奇, 한국식 발음 신기)로 명시하면서 국내 기업의 차이나 리스크가 해소될지 이목이 쏠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2일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문체부 훈령 제448호)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개정 훈령에서는 기존 훈령에서 '김치'의 중국어 번역 및 표기 용례로 제시했던 '파오차이'를 삭제하고 '신치'로 명시했다. 신치는 '맵고 신기하다'는 뜻을 담고있다.
연초 국내에선 중국 역사동북 공정에 이어 김치 동북공정 논란이 일었다. 중국 정부가 국내 김치 제조 기업을 대상으로 '파오차이'라는 중국식 김치 표기를 강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여기에 중국 유튜버를 중심으로 김치가 중국의 전통음식이라고 주장하는 억지 콘텐츠들이 퍼져 논란이 확산됐다.
파오차이는 '중국식 절임 채소'를 의미한다. 한국 전통 음식 김치와 조리법부터 맛까지 모두 차이가 있다. 그러나 중국어에는 한국어와 달리 '김' 소리를 내는 글자가 없어 김치는 중국에서 '한궈 파오차이'(韩国泡菜, 한국식 절임채소) '라바이차이'(辣白菜, 매운 배추김치) 등으로 불렸다.
우리 정부는 한국식 김치 표기를 위해 2010년대 초 농림축산식품부 주도로 김치의 중국식 이름을 '신치'로 지정했다. 이를 중국과 대만, 홍콩에 상표권을 출원하기도 했지만 사용에는 한계가 있다. 신치가 '맵고 신선하다'는 뜻을 담은 탓에 백김치와 동치미 같은 제품까지 포괄해 적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가 '김치'의 중국어 표기 지침을 '파오차이'로 명시하면서 국내 기업은 김치의 중국어 표기 시 '파오차이'를 채택해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에서 김치찌개를 '파오차이탕'(泡菜湯)으로 표기하며 "중국에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음식명의 관영적인 표기는 그대로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커진 건 국내 기업이 시중에 판매하는 김치 식품과 온라인 서비스 내 김치 표기가 파오차이로 쓰이면서다.
GS25는 지난 6월 '스팸 계란 김치볶음밥 주먹밥'의 제품 설명에 김치를 파오차이로 표기해 곤욕을 치렀다. GS25는 하루 만에 해당 제품 판매를 중단하는 시정 조치를 내놨다.
지난 6월 가수 방탄소년단(BTS)과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출연한 네이버 웹예능 '달려라 방탄' 브이라이브(142화) 중국어 자막도 논란이 됐다. 김치가 파오차이로 표현되면서다. 당시 네이버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외국어 번역과 표기 지침을 참고해서 번역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제시한 표기방식이 기업에 불똥이 튀면서 기업은 '김치 표기법을 정부가 나서 정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시민단체 반크 등이 문화체육관광부 훈령을 시정할 것을 적극 요청하면서 '파오차이'는 결국 '신치'로 변경됐다.
네이버는 지난 22일 문화체육관광부의 개정 훈령이 적용된 직후, 개정안을 참고해 브이라이브 내 파오차이 표기를 모두 신치로 변경했다. 네이버사전, 다음사전 등 포털의 사전 서비스도 현재 김치의 중국식 표현을 신치로 제공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측은 이번 개정안 시행을 두고 "'김치'의 중국어 번역 표기를 '신치'로 사용함에 따라 우리의 김치와 중국 음식 파오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고, 나아가 중국에서 우리 고유 음식인 김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 기업이 중국에 김치를 판매할 경우 '신치'를 단독 표기할 수 없는 건 여전하다. 중국 식품안전국가표준(GB) 등 현지 법령상 중국 내에서 유통·판매되는 식품에는 제품의 '진실 속성'(소비자들에게 친숙한 명칭)을 반영하는 표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GB는 상품명에 한자 이외의 외국어를 병기할 경우 한자보다 크기가 더 크면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상품 명칭부터 외국어 표기 기준까지 철저히 자국 중심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중국 현지에서 국내 기업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김치수출협의회 등 유관 단체를 통해 우리 수출기업들을 대상으로 신치 용어의 사용 가능 범위에 대해 자세히 안내한다는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번 개정 훈령을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 기관 협의와 전문가 검토를 바탕으로 수정·보완이 필요한 일부 용어의 용례를 정비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픽사베이, 온라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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