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자체가 충격적이다.
126년 전 세상을 떠난 명성황후의 죽음은 일본인들의 살해로 인한 것이었다. 이를 을미사변이라고 부른다. 1895년 10월 8일 발생한 을미사변은 조선 공사에 취임한 미우라 고루의 주도 하에 일본인들이 경복궁으로 난입해 명성황후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을미사변의 자세한 내용은 아직까지 쉽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당시 명성황후의 시신이 불태워졌고 일본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다가 체포한 사건 가담자 48명을 얼마 지나지 않아 석방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을미사변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가설이나 주장이 등장한다. 하지만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기 때문에 사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당시의 기록 등을 통해서 을미사변의 상황이 어땠는지 살펴볼 뿐이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또다른 사료가 등장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일본 골동품 상점에서 한 일본 군인의 서한이 발견됐다. 이 서한은 나고야시에 사는 일본계 미국인이자 우표 연구가인 스티브 하세가와에 의해 발견됐다. 이 편지는 을미사변 당시 시해 실행에 참여했던 호리구치 구마이치가 작성한 것. 그는 당시 주조선 영사관보였다.
호리구치 구마이치는 을미사변이 일어난 다음 날 자신의 고향 친구이자 한학자인 다케히코 사다마쓰에게 편지를 적었다. 호리구치는 1894년 11월부터 1895년 10월까지 총 8통의 편지를 작성했다. 이 편지는 여섯 번째 편지에 해당한다. 이 편지에는 을미사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없었지만 호리구치의 언급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그는 을미사변에 대해 "담장을 넘어 점차 어전에 이르러 왕비를 시해했다"라면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설명했다. 이후 호리구치는 "의외로 쉬워서 오히려 어안이 벙벙했다"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명성황후가 너무나 쉽게 살해됐다는 것.
이 편지에 대해서 역사가 김문자씨 또한 판독 결과 호리구치 본인 친필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편지 보관 장소를 비롯해 기록 내용, 소인, 봉서 작성 등을 통해 판단했다. 김문자씨는 "아직도 불분명한 점이 많은 이 사건의 세부 사항을 밝혀주는 가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사료들은 을미사변의 내용을 밝히는데 좀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현대 일본인들은 을미사변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아사히신문 또한 이 자료가 공개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건 전말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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