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타인의 충전기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해 가져갔더라도 절도의 고의성을 수사기관이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면 기소유예 처분은 과도하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A씨가 "충전기를 오인해 가져간 것일 뿐 절도의 고의 또는 불법영득의사가 없었으므로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을 내렸다고 7일 밝혔다.
단순히 타인의 점유물만을 침해했다고 절도죄가 성립되진 않으며 재물에 대한 영득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판례 및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다고 주장할 경우 이를 수사기관이 입증해야 한다는 대법원 선행 판결이 근거가 됐다.
B씨는 지난 1월 제주 소재 한 카페에 정오쯤 방문해 2시간가량 머물다 콘센트에 충전기를 꼽아둔채 떠났다. 이튿날 오전 이 카페를 방문한 A씨는 음료를 마시다 B씨가 충전기를 두고 간 방으로 이동했다. A씨는 중간에 잠시 자리를 이탈했지만 2시간 넘게 이 방에 머물다 충전기를 갖고 카페를 나섰다.
B씨의 신고를 받고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경찰은 A씨를 피의자로 특정했다. A씨는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었고, 방 안에 있던 충전기를 자신의 것이라고 오인했었다"고 진술했지만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 처분은 죄는 인정되지만 검사가 선처해주는 불기소처분으로, 범죄경력에는 남지 않지만, 수사경력자료에는 남는다.
헌재는 △긴 시간 카페를 머물며 자신의 충전기로 착각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충전기 색깔이 동일하면 혼동할 가능성이 있으며 △충전기의 충전단자가 A씨 충전단자와 동일한지 여부를 충분히 수사하지 않은 점 △상대적 저가의 물품으로 여러 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분실하는 경우가 흔한데 절도의 고의 또는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중요한 정황으로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의문이 있는 상황에서 청구인이 절도의 고의나 불법영득의사를 부인하고 있다면 수사기관으로서는 당연히 청구인이 이 사건 충전기의 취득 전후에 한 행동들을 수사해 절도의 고의 또는 불법영득의사를 증명했어야 한다"며 "청구인의 행동에 관해 면밀하게 수사하지 않은 채 청구인의 변소를 배척하고 피의사실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이 사건 수사기록만으로는 청구인에게 절도의 고의 또는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부족하다"며 "기소유예처분에는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미진 또는 증거판단의 잘못이 있고, 그로 인해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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